essay

어느 순간

Jonghyo 2023. 12. 28. 02:37

1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공연 다큐멘터리를 봤다.

작은 음악회에 온 것 같은 화면과 마지막 힘을 짜내 연주를 이어가지만 표정만은 밝은 늙은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진행된 연주회를 그의 아들이 촬영했다고 한다.

중간에 '쉬었다 합시다', '힘이 드네요' 정도의 멘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아노 독주로 채워져 있다.

곡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여러 감정이 들었다.

잘 모르는 곡들이 나오니 나른했다가도, 잘 아는 곡이 들려왔지만 들을 때마다 슬픔이 느껴지는 곡이라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고, 예능에서 많이 쓰는 음악이 나와 웃음짓기도 했다.

화면을 보면서는 아버지의 마지막 연주를 바라보는 아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하늘에서 이 영화를 지켜보는 류이치 본인의 심정은 어떨지도 생각해봤다.

건조하게 흑백 처리한 화면은 답답하기도 하지만, 고인이 된 인물표현과 피아노를 표현하기엔 충분해보였다. 덕분에 음악에 더 집중하게 되는것 같기도 하고.

극장에서 음악을 듣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하기에 충분한 영화다. 일부러 앞쪽에 앉아서 봤다.

가까운 시일에 돌비 애트모스로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로 만났다가 종종 듣게 된 막스 리히터에 대한 영화도 곧 봐야겠다. 생각해보니 저장해두고 계속 미루고만 있었다.

 

2

자살을 한 사람은 숨이 끊어지기 바로 직전에 살고싶다는 후회를 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이 말이 나에겐, 흔히들 이야기하는 죽기 직전에 주마등이 지나간다는 말보다 마음에 더 크게 다가왔다.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만 느낄 수 있다는 후회가 있다고 생각해보니 아찔했었다.

살고싶다는, 그러나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대한 후회.

나는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 적어도 살고싶다라는 후회는 하지 않도록 해봐야겠다. 잘 살아야하겠지.

한때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다가 이제는 달라져버린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무슨 후회들을 했을까.

유명인의 자살 소식을 들으면 그 순간엔 항상 매형이 생각나서 잠시 동안은 멍하니 있게 되는데, 오늘도 그랬다.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물어보고 싶은게,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다.